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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렌드 인사이드 ] 점치는 인간

작성자: 변미진 작성일: 2016-01-20 조회: 256

건설경제

작성일 : 2014년11월 25일

제목 : [ 트렌드 인사이드 ] 점치는 인간

인간은 ‘호모 아우구란스(homo augurans)’다. 점치는 인간이란 뜻이다. 예지욕은 인간만의 욕구다. 점복신앙은 오랜 기원을 가진 인류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다. 한반도에 언제부터 점복신앙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함북 무산읍에 위치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적지에서 점의 복골(卜骨)이 발견됐고, 부여에서는 군사를 일으킬 때 소를 잡아 그 굽을 보아 길흉을 점쳤다는 것을 볼 때 그 역사가 꽤 오래된 것 같긴 하다.

과학과 합리의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점을 보는 사람들은 많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올해 초 전국 19세 이상의 남녀 10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38.3%가 점을 본다고 답했다. 특히 ‘화이트칼라’로 꼽히는 전문직(42.5%)이 ‘블루칼라(30.2%)’보다 더 많이 점을 봤다. 인구비로 보면 약 1500만명이 점을 본다는 셈이 된다. 바야흐로 입시철에 연말이다. 점보러 가는 사람들의 행보가 바빠질 시점이다. 이번주 [트렌드 인사이드]의 주제는 예언과 운명론이다.

트로이에는 ‘카산드라’라는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아폴론은 그녀의 미모에 반해 구애했지만 거절당했다.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에게 축복과 함께 저주를 내린다. 축복으로는 신의 영역인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능력을 선사했고, 동시에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를 내렸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문명의 종말과 로마 문명, 동시에 유럽 문명을 탄생시킨 주요한 예언 세 가지를 한다. 첫 번째 예언은 그녀의 동생인 파리스가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며, 트로이를 구하려면 파리스를 스파르타로 보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카산드라의 말을 무시하고 파리스를 스파르타의 산에 버린다.

파리스가 태어날 즈음에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는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의 아내, 레다에게 반한다. 제우스는 레다와의 동침을 꿈꾼다. 하지만 아내 헤라가 너무 무서웠다. 제우스는 매일 호수에서 목욕하는 레다를 훔쳐보다 한 가지 묘수를 떠올린다. 레다가 백조를 좋아하니, 백조로 둔갑해 레다의 품에 안기기로 한 것이다. 순식간에 백조에게 겁탈당한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게 된다. 후에 그 알에서는 헬레나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태어난다. 두 딸 모두 당대 절세의 미녀로 꼽혔다. 후에 헬레나는 그리스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가 되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아내가 된다.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산에 버려진 후 양치기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스 앞에 황금사과가 떨어진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등 그리스의 세 여신이 파리스 앞에 나타나 사과의 주인을 정해달라고 요구한다. 그 대가로 헤라는 권력, 아테나는 지혜,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다.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이미 그리스의 왕 메넬리오스의 아내(헬레나)였다는 점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힘을 빌려 헬레나를 훔쳐온다. 아내를 빼앗긴 남편 메넬리오스는 광분했고 이로 인해 트로이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은 10년이나 진행됐다. 그때 그리스군에 ‘목마’를 제작하라는 아테나의 신탁이 내려진다.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자 트로이인들은 그 목마를 성 안에 들이려 한다. 여기서 카산드라의 두 번째 예언이 등장한다. 카산드라는 그 목마를 들이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목마를 성 안에 들였다. 그날 밤 목마 속에서 튀어나온 그리스군에 의해 트로이성은 함락된다. 트로이의 패망 이후 그리스 연합군의 총지휘자였던 아가멤논은 카산드라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아 미케네로 귀환한다. 이때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에게 ‘당신은 아내(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세 번째 예언이었다. 아가멤논은 귀국한 당일 아내에 의해 도끼로 세 번이나 찍혀 살해당한다.

신의 뜻은 분명했다. 파리스는 나라를 멸망시킬 아이였다. 그 운명의 조연자인 헬레나는 신의 농간에 의해 태어났다. 헬레나의 탄생으로 트로이의 성벽은 불타올랐고, 헬레나의 누이로 말미암아 불세출의 영웅 아가멤논은 살해당했다.

레다가 백조에게 겁탈당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루벤스 등 예술계의 거장들에게 큰 영감을 안겼다. 이 겁탈의 장면은 인간의 운명을 상징한다. 제우스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껴 단 한 번 그녀를 취하고 버리지만,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지중해의 판권을 바꿨다. 영국의 시인 예이츠는 ‘레다와 백조’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이렇게 노래한다. “무심한 (백조의) 부리가 그녀를 놓아주기 전에 그녀는 제우스의 힘과 더불어 지혜까지 얻었는가?” 대답은 물론 ‘아니오’다. 신과 인간이 결합하는 순간, 인간은 신의 폭력성(힘)을 얻어냈지만 혜안까지는 얻지 못했다. 인간은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여기에서 신을 압도하는 인간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암울한 신탁을 받고도 그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인간 군상들을 가리켜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삶에 대한 애착에는 세상의 그 어떤 비참함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있다.”

시지포스는 제우스를 곤란에 빠트린 죄로 산꼭대기를 향해 영원히 돌을 굴려야 하는 벌을 받은 인물이다. 아마도 신들은 신을 능멸하다 영원불멸의 죄를 짊어진 시지포스의 애원과 참회를 보고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지포스는 애원과 참회 대신 묵묵히 자신의 ‘업보’를 짊어진다. 돌이 굴러떨어지면 다시 그 돌을 밀고 오르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간다. 시지포스는 돌을 굴리는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행위를 쉬지 않고 함으로써 자신이 절대자라고 믿는 신에게, 그리고 신이 자신에게 내린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비참함은 숭고함으로 바뀐다. 이런 숭고함은 오로지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대의 신탁은 델포이 신전에서 내려졌다. 신전 앞마당에는 그리스어로 된 하나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노티 세아우톤.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다. 인간이 점을 치는 이유는, 인간만이 삶의 이유를 찾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삶의 종착지가 죽음이란 것을 알고, 대부분의 삶이 내 의지로 선택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각자의 비극을 껴안고 기어코 그 삶을 살아낸다. 이 나약한 존재의 눈부신 위대함에 매료돼 그리스의 신들은 그토록 자주 인간에게 사랑을 구걸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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